기어와 진공관에서 클라우드와 AI까지, 사람들의 현실 고민이 만든 컴퓨터 이야기를
따라가 보세요
밤마다 계산 실수를 고치느라 머리를 싸맸던 수학자 찰스 배비지, “속도가 더 나와야 해요.”라며 진공관을 갈아 끼우던 연구팀, “전화기 하나로 다 하고 싶은데…”라고
중얼거리던 엔지니어까지 컴퓨터 역사는 늘 당장의 불편함에서 출발했습니다.
누군가는 주머니 속에서 코딩하고 싶어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서버를 인터넷에서 빌려 쓰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 질문이 쌓여 오늘의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연도 버튼을 누르면 그때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했고, 그 해답이 다음 세대에 어떤 영감을 남겼는지 순서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낯선 용어가 보여도 “누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했나?”라는 흐름으로 이야기하니 천천히 따라와 주세요.
연도 버튼을 누르면 새 창 없이 팝업 대화 상자가
열리고, 그 자리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이어서 읽을 수 있습니다.
밤마다 검산에 시달리던 수학자 찰스 배비지가 “이제 기계가 좀 해 줬으면”이라며 설계도를 펼친 순간입니다.
수학자 찰스 배비지는 “기계가 지루한 계산을 대신해줬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는 톱니바퀴를 돌려 덧셈을 반복하면 복잡한 표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죠. 비록 완성하진
못했지만, “계산은 기계에게 맡길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배비지가 구상한 기계식 계산기, 즉 차분기관은 복잡한 수식을 여러 번의 덧셈으로 쪼개 기계가 대신 반복하도록 한 설계였습니다. 숫자는 금속 막대의 위치와 바퀴에 새긴 표시로
읽어 냈고, 완성품이 끝까지 만들어지진 못했지만 “반복 계산은 기계에게 넘길 수 있다”는 인식이 이후 컴퓨터 발상으로 이어졌습니다.
1843
아이다 러브레이스 노트 · 분석기관 해석
수학자 아이다 러브레이스가 “카드만 바꾸면 기계가 일을 달리할 수 있다”는 상상을 노트에 또렷이 적어 둔 장면입니다.
아이다 러브레이스는 “기계에게 카드(명령)만 바꿔 끼우면, 숫자 계산뿐만 아니라 음악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드웨어(기계)와 소프트웨어(카드)를 구분한
최초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수학자 아이다 러브레이스가 제시한 분석기관은 펀치 카드로 명령을 정리하고, 계산부와 저장부를 분리한 설계였습니다. 오늘날 반복문과 조건문에 해당하는 개념을 글로 남긴 첫
사례로 평가되며, 숫자 계산을 넘어 기호 조합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여기에서 뚜렷해졌습니다.
1936
튜링 기계 모델 · 계산 가능성
“사람이 종이에 계산하던 과정을 기계가 흉내 내면 어떨까?”라는 튜링의 질문에서 출발한 이야기입니다.
앨런 튜링은 “종이에 칸을 채우며 계산하는 사람의 행동을 기계로 흉내 낼 수 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긴 테이프에 기호를 쓰고 지우는 단순한 기계를 상상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모든 컴퓨터의 기본 원리가 되었습니다.
튜링 기계 모델은 명령표, 현재 상태, 그리고 기호가 적힌 테이프로 나뉩니다. 읽기/쓰기 헤드가 한 칸씩 움직이며 기호를 읽고 쓰기 때문에 계산을 아주 작은 단계로 쪼개서 볼
수 있고, 어떤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아타나소프는 “학생들이 계산하다 지쳐 쓰러지겠다”는 걱정에 전자식 계산기를 만들었습니다. 톱니바퀴 대신 전기로 0과 1을 기억하게 만든 이 기계는, 나중에 거대한 전자
컴퓨터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ABC는 이진수 표현, 전자 스위치, 자동 계산을 한 장치에 묶은 초기 사례였습니다. 숫자는 축전기가 연결된 드럼에 저장하고, 결과는 천공 카드에 남겼습니다. 이 실험이
ENIAC 같은 전자식 컴퓨터 설계에 직접적인 자극을 줬습니다.
1946
ENIAC 가동 · 다목적 전자 컴퓨터
“탄도표 좀 빨리 계산해 줄 수 없나요?”라는 요구에 1만8000개의 진공관으로 답했던 순간입니다.
에니악은 집채만 한 크기에 진공관 1만 8천 개를 쓴 거대한 계산기였습니다. 전선을 일일이 꽂아 연결해야 했지만, 사람이 며칠 걸릴 대포 탄도 계산을 몇 초 만에 해치워 전자
컴퓨터의 위력을 증명했습니다.
ENIAC은 여러 개의 가산기와 함수표 회로를 동시에 돌려 초당 수천 번 연산했습니다. 패널 스위치와 케이블로 직접 프로그램을 설정해야 했지만 전자 회로 덕분에 이전 기계와
비교할 수 없는 속도를 보여 주었고, 덕분에 저장 프로그램 방식 같은 다음 세대 아이디어가 빠르게 실험될 수 있었습니다.
1949
EDSAC · 저장 프로그램 실행
“배선 좀 안 갈아 끼우고 싶다”는 푸념이 프로그램을 메모리에 담자는 결론으로 이어진 순간입니다.
에드삭은 “프로그램을 매번 전선으로 연결하지 말고, 데이터처럼 메모리에 넣어두자”는 아이디어를 실현했습니다. 덕분에 소프트웨어만 바꾸면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현대적인
컴퓨터가 탄생했습니다.
EDSAC은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같은 메모리에 보관하는 방식을 실제로 보여 준 초기 컴퓨터였습니다. 수은 지연선 메모리에 약 천 단어를 저장했고, 자주 쓰는 명령 묶음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불러올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개발자들은 배선에 손대지 않고도 새 코드를 마음껏 시험할 수 있었습니다.
1951
UNIVAC · 상업용 컴퓨터 납품
“선거 결과를 기계가 먼저 알려 준다고요?”라는 방송국의 놀라움이 상업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습니다.
UNIVAC은 선거 결과를 사람보다 빨리 맞혀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기업들은 “우리도 저런 기계로 재고 관리를 하고 싶다”며 줄을 섰죠. 컴퓨터가 연구실을 나와 돈을 버는
상품이 된 것입니다.
UNIVAC I은 자기테이프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초당 약 1900번 덧셈을 처리했습니다. 맞춤형 프로그램과 유지보수 서비스를 묶어 판매하면서 컴퓨터를 “제품이자 서비스”로
다루는 새 시장을 열었습니다.
1956
트랜지스터 컴퓨터 시연
“이번엔 불꽃이 안 튀겠죠?” 트랜지스터로 갈아탄 연구실이 조용해진 대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진공관은 너무 뜨겁고 잘 고장 났습니다. 그래서 작고 차가운 ‘트랜지스터’로 바꿨더니, 컴퓨터가 훨씬 작아지고 튼튼해졌습니다. 이제 에어컨 없이도 컴퓨터를 켤 수 있게 된
거죠.
트랜지스터 컴퓨터는 전력 소비와 고장률을 크게 낮췄습니다. 덕분에 기계를 오래 켜 둬도 안정적으로 돌아갔고, IBM 7000 시리즈 같은 상업용 제품이 이 기술을 받아들여
운영 비용을 눈에 띄게 줄였습니다.
1964
IBM System/360 · 호환성 플랫폼
“기계 바꿔도 프로그램은 그대로 쓰게 해 주세요.”라는 고객의 요구가 System/360 라인업을 탄생시켰습니다.
예전에는 컴퓨터를 바꾸면 프로그램을 다 새로 짜야 했습니다. IBM은 “기계가 달라도 프로그램은 똑같이 돌아가야 한다”는 규칙(호환성)을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소프트웨어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System/360은 8비트 단위, 통일된 명령 집합, 전용 입출력 채널을 도입했습니다. 한 번 만든 소프트웨어를 여러 등급의 기계에서 다시 활용할 수 있었고, 이 구조가
메인프레임 시장을 관통하는 표준이 되었습니다.
1969
UNIX 커널 · 간결한 운영체제
“파일을 전부 같은 방식으로 다루면 어때요?”라는 아이디어가 PDP-7 앞에서 탄생하며 UNIX 문화가 시작됐습니다.
개발자들은 “복잡한 기능은 빼고, 레고 블록처럼 작은 도구들을 연결해서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파일처럼 다루는 이 단순한 철학은 오늘날 리눅스와 맥OS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UNIX는 “거의 모든 것을 파일처럼 다루자”는 생각과 파이프로 프로그램을 잇는 방식, 셸 스크립트 자동화를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BSD와 리눅스 같은
운영체제의 토대가 되었고, 오늘날 POSIX 표준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1971
인텔 4004 · 첫 상업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이 손톱만 한 칩에 계산기 두뇌가 다 들어 있다고요?”라는 탄성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계산기 뇌를 손톱만 한 칩 하나에 다 넣을 수 있을까요? 인텔이 그걸 해냈습니다. 이제 냉장고, 자동차, 장난감 어디에나 “지능”을 넣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인텔 4004는 약 2300개의 트랜지스터를 담아 740kHz로 동작했습니다. 외부 메모리와 연결해 여러 장치의 두뇌 역할을 맡길 수 있었고, CPU를 하나의 칩으로
해결하면서 하드웨어 설계 비용을 크게 줄였습니다.
1977
Apple II · 가정용 컴퓨터 열풍
“전원만 꽂으면 바로 게임도 만들 수 있대요!”라는 박람회 소문이 가정용 컴퓨터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전원만 꽂으면 바로 쓸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복잡한 조립 없이도 집에서 게임을 하고 숙제를 할 수 있게 되자, 컴퓨터는 가전제품처럼 우리
거실로 들어왔습니다.
Apple II는 모니터 연결, 저장 장치 슬롯, 내장 BASIC 등 “사서 바로 쓰는” 기능을 앞세웠습니다. 덕분에 학교와 회사에서 빠르게 퍼졌고,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함께
성장한 대표 사례가 되었습니다.
1980
IBM 801 · RISC 설계 시험
“명령을 줄이면 속도가 올라갑니다.”라는 칠판 앞 토론이 실험용 RISC 칩으로 이어졌습니다.
명령어가 너무 복잡하면 오히려 느려집니다. “자주 쓰는 쉬운 명령만 남기자(RISC)”는 아이디어로 칩을 다시 설계했더니, 속도가 훨씬 빨라졌습니다. 스마트폰 칩의 조상 격인
기술입니다.
801은 같은 길이의 명령, 로드와 저장 분리 같은 RISC 원칙을 실제 칩으로 보여 줬습니다. 회로가 단순해지자 동작 속도를 더 높일 수 있었고, 이 생각은 곧 POWER와
SPARC 같은 상용 RISC CPU로 이어졌습니다. 컴파일러 팀도 짧은 명령을 조합해 복잡한 반복 작업을 처리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1981
IBM PC · 표준 아키텍처
“부품은 시중에서 사 오고 대신 빨리 내놓읍시다.”라는 결정이 IBM PC 생태계를 만들었습니다.
IBM은 비밀주의를 버리고 설계도를 공개했습니다. “누구나 부품을 사서 조립할 수 있다”는 개방성 덕분에 수많은 호환 PC가 쏟아져 나왔고, 컴퓨터가 전 세계 사무실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IBM PC는 인텔 8088 CPU와 MS-DOS를 사용했고, 확장 슬롯과 공개된 BIOS 덕분에 다른 제조사가 손쉽게 호환 기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 구조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x86 PC 생태계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989
월드 와이드 웹 제안
“문서를 클릭만으로 옮겨 다니면 어떨까요?”라는 버너스-리의 질문이 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팀 버너스-리는 “문서들이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상상했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지구 반대편의 정보를 볼 수 있는 “웹”이 탄생하며 인터넷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웹은 단순한 규칙과 문서 형식으로 서로 다른 컴퓨터를 이어 붙였습니다. 곧 다양한 브라우저와 서버가 등장했고, 인터넷이 대중적인 정보 통로로 자리 잡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1991
리눅스 커널 첫 배포
“무료로 쓸 커널 하나 만들고 있는데 같이 시험해 볼래요?”라는 메일이 전 세계 개발자를 움직였습니다.
대학생 리누스 토르발스가 “재미로 만든 운영체제”를 무료로 공개했습니다. 전 세계 개발자들이 달려들어 살을 붙였고, 이 집단지성은 이제 슈퍼컴퓨터부터 안드로이드 폰까지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되었습니다.
리눅스는 GPL 라이선스를 택해 누구나 코드를 고치고 배포할 수 있게 했습니다. 곧 패키지 관리자와 여러 배포판이 등장하면서 용도와 환경에 맞춘 운영체제가 빠르게
만들어졌습니다.
1995
Windows 95 · 대중 GUI
“버튼만 누르면 프로그램이 다 뜨네요!”라는 감탄이 Windows 95 행렬을 만들었습니다.
컴퓨터를 켜면 검은 화면 대신 “시작” 버튼이 반겨줍니다. 마우스로 아이콘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이 쉬운 화면 덕분에, 컴맹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누구나 인터넷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Windows 95는 플러그 앤 플레이, 32비트 커널, 통합 네트워크 기능을 한 번에 묶어 사용자 경험을 단순화했습니다. 웹 브라우저와 사무용 프로그램이 함께 퍼지며
대중적인 소프트웨어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2003
x86-64 서버 공개
“32비트 프로그램은 그대로 두고 메모리는 더 쓰게 해 드릴게요.”라는 AMD의 약속이 현실이 된 순간입니다.
AMD는 “기존 프로그램도 잘 돌아가면서, 메모리는 훨씬 많이 쓸 수 있는 칩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경쟁사가 아예 새로운 방식을 고집할 때, AMD는 “익숙함에 강력함을
더하는” 실용적인 길을 택했죠.
서버 관리자들은 환호했습니다. “기존 프로그램을 새로 짤 필요 없이, 램만 꽂으면 성능이 확 올라가네!” 이 방식이 너무나 효율적이어서, 결국 경쟁사였던 인텔도 이 설계를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x86-64는 컴퓨터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양을 32비트에서 64비트로 늘린 기술입니다. 덕분에 4GB 이상의 메모리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어, 오늘날의
고사양 게임이나 대용량 데이터 처리가 가능해졌습니다.
2006
AWS EC2 · 임대형 컴퓨팅
“서버 추가하려면 몇 주씩 걸리잖아요.”라는 불만에 아마존이 “이제는 API로 바로 만드세요.”라고 답했습니다.
예전에는 인터넷 서비스를 하려면 비싼 서버 컴퓨터를 직접 사서 관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마존은 “전기 쓰듯이 서버도 필요할 때 빌려 쓰고 요금을 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개발자들은 열광했습니다. “이제 클릭 몇 번이면 슈퍼컴퓨터를 빌릴 수 있어!” 덕분에 돈 없는 스타트업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넷플릭스나 배달의민족 같은 거대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AWS EC2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시작입니다. 내 컴퓨터가 아니라 아마존의 거대한 데이터센터에 있는 컴퓨터를 원격으로 빌려 쓰는 방식이죠. 덕분에 누구나 쉽고 싸게 서버를
운영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2007
아이폰 공개 · 포켓 컴퓨터
“전화, 음악, 인터넷이 한 손에 다 들어 있다고요?”라는 탄성이 모바일 컴퓨팅을 바꿔 놓았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무대에서 “전화기, 아이팟, 인터넷 기기를 하나로 합쳤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세상이 뒤집어졌습니다. 단순히 화면을 터치하는 것을 넘어, 누구나 앱을 만들어 팔
수 있는 장터(앱스토어)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개발자들은 “내 아이디어가 전 세계 사람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니!”라며 흥분했고, 곧이어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같은 앱들이 쏟아져 나와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아이폰은 ‘손안의 컴퓨터’ 시대를 열었습니다. 특히 앱스토어는 하드웨어 제조사가 아닌 누구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팔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모바일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2007
NVIDIA CUDA 공개
“GPU 수천 개 코어를 계산에 써 보세요.”라는 제안이 연구실 밤샘 실험을 불러왔습니다.
원래 그래픽 카드(GPU)는 게임 화면을 그리는 부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엔비디아는 “이 엄청난 계산 능력을 게임 말고 다른 데도 쓰면 어떨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GPU를 수학 계산에도 쓰세요”라고 문을 열어주자, 과학자들은 환호했습니다. “슈퍼컴퓨터가 없어도 복잡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어!” 이 결정이 훗날 인공지능(AI)
시대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죠.
CUDA는 그래픽 카드를 ‘수학 천재’로 바꿔주는 기술입니다. 단순한 계산을 동시에 엄청나게 많이 처리할 수 있는 GPU의 능력을 활용해, 오늘날의 딥러닝과 AI 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2012
딥러닝 이미지 분류 돌파
“오류율이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라는 발표가 딥러닝 투자 경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인공지능은 고양이와 강아지도 잘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제프리 힌튼 교수팀이 “GPU로 뇌 신경망을 흉내 내보자”는 시도를 했고,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AI가 사진 속 사물을 사람처럼 알아맞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게 된다고?” 연구자들은 앞다퉈 GPU를 사 모으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알파고, 챗GPT 같은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딥러닝은 사람의 뇌세포가 연결된 방식을 모방한 인공지능 기술입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계산이 필요한데, GPU 덕분에 현실적인 시간 안에 학습이 가능해지면서 AI의
황금기가 열렸습니다.
2014
컨테이너와 오케스트레이션
“환경이 바뀌어도 똑같이 돌아가게 해 주세요.”라는 SOS에 컨테이너와 오케스트레이션이 답을 내놓았습니다.
소프트웨어를 다른 컴퓨터로 옮길 때마다 “어? 내 컴퓨터에선 됐는데 왜 안 되지?”라는 문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컨테이너’입니다. 마치 이삿짐을
컨테이너 박스에 통째로 담아 옮기듯, 프로그램과 실행 환경을 하나로 묶어버린 거죠.
이제 개발자들은 “내 컴퓨터에서 되면, 서버에서도 무조건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컨테이너 기술(도커 등)은 소프트웨어 배포의 혁명입니다. 어떤 컴퓨터에서든 똑같이 실행되도록 보장해주기 때문에, 클라우드 환경에서 대규모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 되었습니다.
2020
Apple M1 · 통합형 PC 칩
“팬이 거의 안 도는데 영상 편집이 되네요!”라는 리뷰가 맞춤형 PC 칩 경쟁에 불을 붙였습니다.
애플은 “왜 노트북은 뜨겁고 시끄러워야 하지?”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 칩을 만드는 기술로 노트북용 칩(M1)을 만들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하루 종일 배터리가 가는데도 성능은 최고급 PC보다 좋았으니까요. 팬 소리도 나지 않는 이 노트북을 보고 사람들은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들었나?”라며 감탄했습니다. 컴퓨터
칩의 상식을 깬 사건이었습니다.
Apple M1은 CPU, GPU, 메모리 등을 칩 하나에 다 때려 넣은 ‘통합 칩(SoC)’입니다. 데이터가 멀리 이동할 필요가 없어 속도는 빠르고 전기는 적게 먹습니다.
이후 PC 시장의 흐름을 ‘전력 효율’ 중심으로 바꿔놓았습니다.
2023
생성형 AI 가속 인프라
“이 랙이 전부 한 모델 학습용이라고요?”라는 감탄이 생성형 AI 인프라 경쟁을 보여 줍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데이터센터의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게 중요했다면, 이제는 AI를 가르치기 위해 엄청난 계산을 하는 게
중요해졌습니다.
기업들은 AI 전용 칩 수만 개를 연결해 거대한 ‘인공지능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답해줘”라는 우리의 말 한마디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슈퍼컴퓨터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성형 AI는 엄청난 규모의 연산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를 위해 GPU 수천 개를 고속으로 연결하는 기술이 중요해졌고, 데이터센터는 이제 단순한 창고가 아니라 거대한
계산기처럼 진화하고 있습니다.